연구실을 떠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안녕하세요. 저는 26년 8월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는 회사에 재직중인 김현우입니다. 2022년 1월 겨울 URP로 연구실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중간에 인턴쉽 6개월을 제외하고 총 4년의 기간동안 많은 것들을 느끼고 성장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한 학기를 마칠 때마다 작성했던 회고록은 언젠가부터 ‘후배들이 꼭 알았으면 좋을만한 내용들’을 가르쳐주려 하거나, 어떨 때는 반성문이 되기도 했었던 것 같네요. 그런 글도 분명히 큰 의미가 있겠지만 이번 글은 제가 연구실 페이지에 작성하는 마지막 글인만큼 새로운 시작을 하는 제 마음가짐 위주로 적어보겠습니다.

연구실에서 보낸 시간들

연구실에서 저를 가장 심적으로 힘들게 했던 것은 결국 무의미하게 흘러갔다 느껴진 시간들이었습니다. 정말 이 실험이 성능만 잘 나와주면 논문에 쓸 논리도 탄탄하고 모든 스토리라인이 완성되는데, 그런 실험들을 몇 달 반복해도 경향성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럼 그 시간들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이 몇 달간 분명히 저는 비판적 사고력도 늘었었고, 코딩 실력이나 작업 내용을 정리해 동료들에게 전달하고 토론하는 능력도 엄청 늘어있었을텐데, 그런 성장한 모습은 살펴볼 마음의 여유가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완성된 결과물이 없었습니다. 내 실력은 늘었지만 그걸 남들에게 객관적으로 증명할 결과물이 없는 것입니다.

석사 입학 직후 이런 생각들로 의욕도 생기지 않고 자리에 앉아도 머리가 멍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교수님께 면담을 요청했었고 교수님께선 학위라는 것이 그런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증표이고, 다들 그 학위를 인정해주는 이유라 말씀해주셨습니다. 이후부터 저는 다시 제가 무엇을 얻기 위해 석사 과정으로 입학했는지, 왜 이 분야를 선택했는지 곱씹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힘든 일이 있어도 보통 혼자 삼키며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오다보니 혼자 이겨낼 수 있는 일의 역치는 높아졌지만 큰 일이 닥쳐왔을 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무너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대학원 생활을 하며 이겨내야 하는 것은 저 혼자의 몫인 것은 맞지만, 그 과정까지 혼자 짊어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꺠달았습니다. 그때부터 팀 동료들과 더 많이 소통하고 혹시 누군가 저처럼 혼자 힘들어하고있진 않을까도 생각해보며 힘듦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도 해야함을 알게되었습니다.

연구적인 아이디어와 실험을 지속하려면 기본적인 의욕이 뒷받침되어야한다 생각합니다. 그 의욕을 바탕으로 내 실력을 증명할 결과물이 나오기 전엔 남들을 설득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마지막까지 결과물을 완성해내는 끈기가 제가 석사과정을 마치며 얻어가는 가장 큰 능력이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시작

마지막 학기엔 개인 연구를 마무리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학위 논문 작성, 졸업 준비 및 취업 준비에 썼습니다. 앞서 진행한 개인 연구가 잘 마무리되며 석사 학위 논문의 서사는 제가 기존에 원하던 방향성으로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석사 졸업 후 취업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에 대략 1년 전부터 공고들을 많이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제 연구 주제와 잘맞는 비디오 downstream task 관련 직무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본격적으로 지원 가능한 시기인 26년 초부터는 VLM 공고의 비율이 높아졌고, 졸업 시기인 26년 7, 8월에는 VLM을 만드는 회사들(네이버 클라우드, 업스테이지 등) 이외에 나머지 회사들은 대부분 AI Agent Engineer, AX Engineer 직무를 원했습니다.

저는 결국 빠르게 Video Agent Research Engineer로 스타트업에 취업했습니다. 졸업 후 하반기 대기업 공채를 노려볼 수도 있지만, 여러 이유로 빠른 취업을 선택했습니다. 먼저 채용 시장이 녹록치 않다고 느껴졌습니다. 일부 대기업에선 채용 공고를 올리고 최종 면접도 봤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채용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여럿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시장 상황적, 경제적인 이유가 크겠죠.

다음으로 신입 채용에 있어 진짜 신입은 중고 신입을 이길 수 없다 생각합니다. 석사는 보통 학부 졸업자들과 함께 신입으로 취급됩니다. 이 신입들이 쌓을 수 있는 경험은 대학 4년과 석사들은 추가 2년 정도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시간에 비해 저는 스스로도 굉장히 많은, 좋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회사에서 실무 경험을 쌓고 대기업에 도전하는 중고 신입들이었습니다. 경력 있는 중고 신입들이 자신의 몸값을 신입과 동일하게 부르며 들어오는데 회사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마지막으로는 시장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근 6개월 사이에 회사들이 원하는 직무는 완전히 달라지고 있고, 지금 많이 뽑는 직무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나면 그 사이 시장은 또 어떻게 바뀌어있을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유사 경험을 활용해 현 시점에 수요가 높은 직무로 입사한 뒤 회사에서 실무 경험을 쌓아 내가 직접 중고 신입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도 다시 한 번 왜 규모 있는 중견, 중소에 가지 않고 초기 단계의 회사에 들어갔는지에 대해서 궁금하실 수 있습니다. 중견기업은 대기업과 상황이 비슷했던 것 같고, 실제로 시리즈 B 규모의 스타트업에도 최종합격을 했었지만 여러 조건을 따져보았을 때 더욱 작은 규모의 현재 회사를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습니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면 ‘어차피 대기업에 가지 못한다면 중견, 중소기업의 부품이 될 바엔 차라리 내가 초기 스타트업의 zero-to-one을 직접 쌓아보자’는 생각이 컸습니다. 위에서 내려주는 업무들만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진 분들이 회사의 방향성을 결정하는데에 작게라도 영향을 주는 직원이 되고싶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직무가 100% 일치하고 제 가치를 알아봐주시는 기업의 제의를 받아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와 제 상황이 마침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던 것이죠. 부차적으로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과 더 얇은 층위로 맞닿아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습니다.

글을 마치며

돌이켜보면 22년 초 처음 연구실에 들어왔을 때의 저는 연구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동안에 일이 잘 풀렸던 시기보다 오히려 뜻대로 되지 않았던 시간들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많이 지도해주신 교수님과 함께 연구했던 연구실 동료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제가 선배 연구원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후배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선배였었다면 좋겠네요!

앞으로는 석사과정 때 겪었던 것보다 훨씬 큰 규모의 어려움이 닥칠 것이고, 밤을 샐 날도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이때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커리어가 크게 좌우될 텐데요. 석사 과정 동안 교수님과 연구실 동료들로부터 얻은 연구 능력과 끈기를 밑바탕 삼아, 새로운 환경에서도 계속 배우고 결과를 만들어내며 재미있게 회사 생활 해보겠습니다.

4년동안 감사했습니다.

Author: 김 현우

3 thoughts on “연구실을 떠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1. 안녕하세요, 현우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처음 URP를 시작했을 때 현우님을 뵀던 게 생각나네요. 1주차 세미나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 연구실은 정말 수준이 높구나. 나도 이 연구실에서 함께하게 된다면 저 사람을 목표로 더 열심히 해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함께한 3년 동안 직접 같이 연구를 해본 적은 없었지만, 세미나나 X-Review를 하면서 현우님의 생각을 들을 때마다 ‘역시 잘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저도 자연스럽게 많이 배웠던 것 같습니다.

    막바지에는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계획했었는데 결국 함께하지 못하게 되어 많이 아쉽네요. 그래도 그 과정에서도 배울 점이 있었고, 저에게는 좋은 경험으로 남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회사 생활도 응원하겠습니다. 언젠가 또 좋은 기회로 함께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2. 안녕하세요. 현우님.

    제가 URP 처음 시작했을 때 현우님께서 저를 담당해주신 기억이 나네요.

    연구실 생활하면서 많이 마주치지는 못했지만 현우님의 글이나 세미나를 통해서 연구에 몰입하는 사람이란 저런 사람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채용공고가 그렇게나 빠르게 shift 될 수 있는지는 몰랐네요. 어떻게 채용 시장을 봐야할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현우님은 연구실에서 굉장히 유머러스한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환경에 가셔도 금방 잘 적응하실거라 생각됩니다. 앞으로의 여정을 응원하겠습니다!

  3. 안녕하세요. 현우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가 연구실에 들어온 이후 현우님과 직접적으로 많은 대화를 나눠보지는 못했던 게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아쉽네요.
    글을 읽으면서 특히 연구가 잘 풀리지 않았던 시간들을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에 대한 부분을 얘기해주셨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현우님이 항상 연구도 잘 진행하시고, 세미나나 X-Review에서도 정리가 굉장히 잘 되어 있어서 큰 어려움 없이 연구를 해오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과정 속에서도 결과가 나오지 않아 힘들었던 시간들이 꽤 많았다는 점이 조금 의외이기도 했습니다. 하하
    개인적으로는 글을 읽으면서, 현우님께서 4년의 연구실 생활을 다시 돌아간다면 어떤 부분을 다르게 해보고 싶으신지도 궁금해졌습니다. 결과가 나오지 않는 시간을 너무 낭비한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았을지,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 더 일찍 고민을 이야기했으면 좋았을지, 혹은 연구 방향이나 실험을 조금 더 과감하게 바꿔봤으면 좋았을지 등등이요..허허

    그리고 결국 마지막까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끈기가 석사과정에서 얻은 가장 큰 능력이라는 말씀도 공감이 많이 됐습니다. 연구실에서 쌓은 경험이 새로운 회사에서도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하고, 특히 말씀하신 zero-to-one을 직접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또 어떤 것들을 배우실지도 기대됩니다.

    4년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고 새로운 시작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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