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25년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올 한 해를 되돌아보고 2026년을 어떻게 맞이하면 좋을지에 대해 글을 작성하고자 합니다. 어떻게 글을 작성하면 좋을까 고민을 해봤는데 딱히 좋은 생각은 없어서요. 그냥 두서 없이 적어보겠습니다.
과거 회고록
우선 예전에 제가 작성한 회고록들을 한번 훑어봤습니다. 22년도 상반기 회고록과 23년도 상반기 회고록을 읽고 그 보다 더 이전에 작성한 회고록은 너무 옛날인 것 같아서 굳이 보지는 않았습니다. 22년도 회고록에서는 논문을 빨리 써야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던 저의 모습이 담겨져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정말 힘들었습니다. 허리도 아프고 신경통으로 앉아있는 것 자체가 괴로웠었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돈을 썼었네요. 회고록의 끝에서 그 당시 저는 지금 쓰고 있는 논문을 빨리 마무리 짓고 새로운 논문을 써보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참고로 22년에 지원이형의 연구를 이어받아 빨리 마무리 짓고 싶어했던 그 논문은 결국 24년도 4월에 붙게 됩니다. 그 사실을 그때의 저가 들었으면 엄청 충격받았을 것 같네요. 해당 논문을 빨리 붙이려고 발버둥치려고 했었는데 끌끌..
23년도 상반기를 마치고 나서 작성한 회고록에는 제안서 작업을 핑계로 논문 작업을 성실히 하지 못한 그 당시의 저를 반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들러의 심리학에 감명을 받았는지? 해당 심리학을 자신의 연구실 생활에 적용하려고 장황하게 글을 써놨더군요.
뭔가 예전의 글을 읽으니 많이 부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그 당시 적어놨던 저의 마음가짐에는 지금도 많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고,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지녀야한다.” 라던지, “인생은 찰나의 연속으로 지금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에 집중해야한다. 즉 과거의 연연하지도 말고 미래에 매달리지도 말라.” 와 같은 내용은 여전히 제가 살고 싶어라하는 마음가짐과 동일합니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답드리기 부끄럽네요.
25년도 상반기를 마치며 쓴 회고록도 있긴 한데 그 글은 약간 관심 있는 분야의 산업과 회사 기술 등을 소개하는 것을 위주로 작성한 글이라서 딱히 언급할만한게 없네요. 아무튼 2~3년 전의 저는 논문 성과라던지 미래의 불확실성 등으로 인하여 많이 조급했던 것 같습니다. 조급함을 버려야한다는 것을 그 당시에도 알고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었고 이로 인해 찾아오는 여러 아픔등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를 열심히 찾아보았던 듯 해요.
올 해 회고록
그리고 벌써 2025년도가 마무리 되어가고 있습니다. 올 한 해에 대한 회고록도 이전 회고록과 마찬가지로 좋았던 점과 힘들었던 점 그리고 바라는 점 등을 작성해볼까 합니다. 원래라면 연구실 생활과 연구자로서의 역량 등을 중점적으로 하여 글을 쓰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올 한 해 저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제 개인사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얘기를 다룰 수 밖에 없을 것 같으니 이 점 양해 바랍니다.
저에게는 4살 위의 형이 하나 있었습니다. 재치 넘치는 사람이라 가족과 주변인들을 항상 즐겁게 만들었고 학교에서도 나름 모범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성격이 많이 좋아서인지 어릴때 제가 잘못을 해도 화만 낼 뿐 물리적 교육?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랑 잘 놀아도 주고 그랬어서 저는 그런 형이 좋았고 닮고 싶어라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랬던 저희 형은 작년 5월에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올 4월에 세상을 떠났어요. 판정을 받고 11개월정도 살다가 갔는데 저는 그 사이에 잠시 연구실을 쉬면서 형이랑 함께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형과 특별한 무언가를 같이 하지는 않았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형과 함께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놀고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었을 뿐입니다. 물론 평소보다 가족끼리 여행을 다녀오는 날도 많아지긴 했지만 항암 치료 일정으로 인해 장거리 여행은 못하고 간단하게 국내 위주로만 다녔던 것 같네요.
비록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고 단순히 한 방에서 컴퓨터 게임만 했었지만 그 시간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형이랑 같이 PC 게임을 정말 많이 했었는데 성인이 되고 제가 자취를 하면서부터는 그러한 시간도 많이 줄었어서 그런지 그 시간이 더욱 즐거웠습니다. 올 한 해 가장 좋았던 점을 꼽으라면 형과 함께 보낸 위의 시간들이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행복한 순간은 왜 이리 빨리 지나가는 걸까요? 웃으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던 형은 올 3월달에 항암 치료가 내성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빠르게 몸이 나빠져갔고 마약성 진통제가 없이는 편하게 쉴 수도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4월에는 뇌경색으로 쓰러져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며 결국 3주 동안 병실에 누워있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형의 부재는 저에게 삶에 있어서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떠한 태도를 지니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단순히 100세시대라고 떠들었지만 납골당을 가보니 생각보다 주위에 환갑도 넘기지 못하고 일찍 돌아가실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병원에는 젊은 나이의 환자들도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확률적으로는 낮겠지만,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 사람 인생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는 곧 내일 당장 죽더라도 후회 없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일단 결론부터 말씀하면 아직 어떤 삶을 살아야 지금을 만족할 수 있을지, 내일 죽더라도 행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정말 막연하게 연구실 생활을 보내왔습니다. 그냥 높은 티어의 저널 또는 학회에 논문을 붙여서 빠르게 실적을 쌓고 남들에게 인정을 받아 좋은 대우 받으면서 일하고 싶어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연구자로서의 목적은 불분명했었고 그냥 좋은 곳에 논문을 써서 붙여야겠다는 생각밖에 안들었습니다. 이는 곧 단기적으로 논문의 결과만을 우선시하였고 논문의 합불 여부에 따라서 감정이 크게 동요했었습니다. 특히 논문이 떨어졌을 때의 그 힘든 감정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던 것인지 한때는 논문을 작성하는 것을 꺼려하는 지경까지 왔었습니다.
게다가 현재 컴퓨터비전을 포함한 AI 분야는 너무 빠르게 기술 및 연구 트렌드가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잠시 1년을 쉬다가 온 저는 새로 등장한 연구의 흐름을 따라잡기가 너무 벅차더군요. 나름 고군분투하면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1년만에 제가 전혀 모르는 새로운 개념들의 논문들이 쏟아져나오니 이대로는 저만의 전공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라는 걱정까지 했던 것 같습니다.
정리하면, 연구자로서의 뚜렷한 목표는 없이 학위를 받은 뒤 좋은 직장에 들어가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단순히 실적을 쫓아 논문 작성만을 목표로만 보내던 삶은 만족스러운,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원 생활 자체가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만 하고 어찌보면 미래를 위해 희생한다는 느낌도 없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박사과정을 최대한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무언가 변화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지금이라도 박사과정 동안의 목표와 동력을 바꿀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당장은 지적 호기심을 최대한 발휘하는 쪽으로 접근하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종대 전체를 손 쉽게 네비게이션 할 수 있는 프레임워크를 만들어본다던지 아니면 반려 로봇을 만들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소하거나 막연하더라도 제가 해보고 싶은 목표를 설정하고 해당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술들은 무엇인지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공부하는데 있어 압박감보다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야하지 않을까 하네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소한 연구 결과 부산물들을 모아서 논문으로 작성하는 것이죠. 이렇게 하면 비록 해당 논문이 accept되지 않더라도 저의 목표를 향해 다가가고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과정이 더 주된 목적이기 때문에 압박감이나 상실감도 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리하면, 2026년의 목표 중 하나는 내일 죽더라도 후회 없는 삶을 사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저만의 답을 찾는 것이고 그 시작을 위에 언급한 방향대로 조금씩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제 생각에는 너무 이상적인? 목표라서 제대로 실천이나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고, 위의 방식대로 연구실 생활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마 평생을 고민해야할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부터 꾸준히 해보려고 합니다.
글을 마치며
어쩌다보니 제 개인사만 이야기하고 하반기 동안에 있던 연구생활의 회고는 제대로 다루지 못했네요. 뭔가 두서없이 글을 쓴다고는 했지만 지금까지 제가 다룬 내용이 하반기 연구실 관련 회고와는 잘 엮이지 않을 것 같아서 뺏습니다. 아마 내년에 상반기를 마치면서도 회고록을 작성할 것 같으니 그때 함께 다루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뇌경색으로 제대로 말을 하지도 못하는 형이 저희 가족에게 항상 하던 말이 있었습니다. “괜찮아”.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마약성 진통제가 아니면 통증이 심해 힘들어하던 형의 몸이 갑자기 괜찮지는 않았을터이니.. 자신을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너무 걱정말라는 의미로 했던 것이겠죠. 아니면 절망적인 상황에서 형 자신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확한 뜻은 모르겠지만 그 힘든 상황에서도 괜찮다는 말을 할 수 있었던 형이 대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픔으로 다가오곤 했습니다.
제가 가끔 많이 힘들 때 형이 나지막이 이야기했던 그 괜찮아 라는 말이 생각이 많이 납니다. 그때 형한테 들었던 말을 생각하면 마음이 뭔가 살짝은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괜찮지 않은데 억지로 괜찮을거라고 고집하는 것은 안되겠지만 긍정적인 마음을 항상 되새기고 곁에 두는 것도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연구원분들 중에 현재 연구실 생활이 힘들수도 있고 또는 나중에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 힘든 일들이 생기더라도 그 상황을 괜찮다고 할 수 있는 용기가 항상 곁에 있기를 바래봅니다. 또한 내일이 마지막이더라도 행복할 수 있는, 현재가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