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올해는 어땠는지 정리해보고 내년에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연구실 생활을 이어갈지 간단히 적어보려고 합니다. 저는 올해도 연구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만큼 얻은 것도 많았지만 아쉬움도 분명히 남는 한 해였습니다.
올 한 해를 보내며
올해 가장 힘들고 기억에 남는 일은 처음으로 논문 한 편을 직접 작성해봤다는 것입니다. 논문을 “읽는 것”과 “쓰는 것”은 다르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막상 제가 직접 쓰는 과정에 들어가보니 그 차이를 아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생각보다 고려해야 할 것이 정말 많았고,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문제 정의였습니다.
저는 기존 베이스라인에 MoE(Mixture-of-Experts)라는 모듈을 적용해보며 성능을 올려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때의 저는 “왜 MoE가 필요한가”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좋다고 알려진 모듈을 넣고 결과가 좋아지길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문제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성능이 떨어졌을 때 왜 떨어졌는지 분석하는 것도 어렵고, 다음 실험에서 무엇이 부족한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나가야 할지도 막막했습니다. 결국 이 과정이 반복되니, 실험을 하나 더 올릴 때마다 기대감보다는 부담감이 먼저 드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제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성능을 올리려는 시도보다 먼저,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고 ‘왜 이게 필요한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다음 실험도, 다음 개선도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2025 CVPR에 다녀왔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좋다고 느낀 논문들은 대부분 문제 정의가 명확했고, 그 문제를 잘게 나눠서 논리적으로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설득력 있었습니다. 그때부터는 논문을 볼 때도 ‘기법이 얼마나 새로워 보이는가’보다, ‘이 논문이 해결하려는 문제가 무엇인가’가 더 먼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또 하나, 논문을 제출하고 리뷰어 코멘트를 직접 받아보니 제가 생각한 것보다 고려할 게 훨씬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단순히 방법론을 제안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험 설계와 비교의 공정성, 어블레이션의 구성, 주장과 결과의 정합성 등 논문으로서 성립하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후에는 논문만 읽는 것이 아니라 OpenReview도 같이 활용하면서, 사람들이 어떤 지점을 문제 삼고 어떤 근거를 요구하는지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요소들이 단지 리뷰 대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모델 설계 단계에서부터 고려되어야 하는 중요한 기준이라는 것도 많이 깨달았습니다.
지금부터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년에는 제 개인 연구를 문제 정의와 분석을 더 명확하게 한 뒤 논문으로 완성하는 데에 집중해보고 싶습니다. 올해는 방향이 흔들릴 때마다 실험과 분석이 분산되는 느낌이 있었는데, 내년에는 처음부터 기준을 고정하고 한 단계씩 쌓아가며 결과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2026년 상반기에는 6개월 동안 RAG 개발 인턴을 책임 맡아 진행할 계획도 있습니다. 이 인턴을 통해 제가 얻고 싶은 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결과보다, AI 개발 워크플로우 자체를 팀과 함께 구축하고, 그 과정에서 전체 파이프라인을 습득하는 경험입니다. 계획을 세우고, AI 도구를 활용해 빠르게 구현하고, 테스트와 리뷰로 검증하며, 다시 수정하는 루프를 실제 프로젝트 안에서 반복하면서, 파이프라인을 하나씩 연결해보려 합니다. 데이터 전처리–인덱싱–검색–생성–평가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직접 다뤄보면서, 연구에서 머리로만 알고 있던 것들을 현실의 제약 속에서 정리해보고 싶습니다.
결국 이 과정도 올해 배운 교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구현할지보다 먼저 무엇을 해결할지를 분명히 하고, 그 정의에 맞춰 단계적으로 설계하고 검증하는 습관을 만들겠습니다. 개인 연구는 개인 연구대로 중심을 잡되, RAG 개발 경험은 제 연구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활용해보려고 합니다.
연구실 생활에 대한 생각
올해 인상 깊었던 또 하나는 대학원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영상입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TVuZr92KEOQ)[당신은 다른 사람의 성공에 기여한 적 있는가? | 이소영 마이크로소프트 이사 | 성장 파트너십 성공 | 세바시 1350회] 이 영상에서 강연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성공에 어떻게 기여하나요?” 저는 이 질문이 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제가 지난 2년간 연구실 생활을 돌아보면, 솔직히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동안 저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만 초점을 맞춰왔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세미나를 들을 때도 질문하는 빈도 자체가 늘었고, 더 중요한 것은 질문의 방향이었습니다. 단지 방법론의 내용을 묻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에게 내가 어떤 아이디어를 줄 수 있을지를 질문 속에 담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제 연구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연구에도 관심을 갖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시간을 쓰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도 느꼈습니다.
강연에 들었던 내용처럼 앞으로 저는 이런 마인드셋으로 연구실 생활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성장할 수 있다는 성장 마인드셋을 가지고, 옆에 있는 동료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파트너십의 힘을 경험하고 싶다”. 내년에는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가”뿐만 아니라, “내가 누군가의 성장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했는가”도 제 스스로의 기준으로 두고 살아보려고 합니다.
글을 마치며
올해는 많은 것을 배우면서도, 부족함을 분명히 느낀 한 해였습니다. 다만 예전처럼 막연히 “열심히 해야지”로 끝나는 게 아니라, 무엇이 부족했고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에 대한 감이 조금은 생겼다는 점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년에는 문제 정의와 문제 분석을 더 명확하게 하고, 그 위에 논리적 모순이 없는 방법론을 쌓아 부끄럽지 않은 논문 한 편을 완성해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