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상인 연구원입니다.
금주에는 6월을 마무리하며, 2024년 상반기를 마무리하며 금년 상반기 간의 해온 일과, 후반기를 준비하는 글을 쓰려합니다. 마침 창밖에는 비오는 소리가 들려 괜스레 글 쓰기가 좋습니다.
금년도 1월의 신년 세미나에서 석사 기간 동안 하고 싶은 연구를 발표하고, 일 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 발표했었는데, 그 자료를 지금쯤 다시 되돌아보면 이전 2년 간의 회고에 비해서는 부족한 점, 단점만 보이거나 후회하는 글보다 ‘나 그래도, 그 누구보다 빠르다고는 말할 수 없을 지언정, 성장중이구나’는 감정의 글을 작성할 수는 있어보입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연초 신년 세미나에서 저는 다른 업무(잡무)들에 과도히 집중하여 나의 일을 잘 해내지 못함을 발표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보니 나는 어떤 다른 나만의 완벽함을 위해 남들에 비해 많은 시간을 소비하였으며 이제는 그 수준에 이르기에 이전에 비해 훨씬 시간이 적게 소비되었다는 점입니다. 익숙함과 함께 일부 작업에서는 숙달됨이라는 용어가 붙을만큼입니다. 연초에서는 단순히 ‘연구 외 타 업무(잡무)에는 너무 집중하지 않고, 시간 조정을 통해 하는 만큼만 하고 본질에 집중하자’고 생각하였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교수님이 며칠 전 올려주신 ‘학문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젊은 학자들을 위하여’의 몇 부분을 빌리자면, 연구 외의 업무도 때로는 그리고 종종 그 자체로 중요한 업무입니다. 잡무라고 불릴만큼의 업무라할지언정, 맡겨진 역할을 성실히 수행함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그 업무로 일주일이 소비될 수도 있지만, 그도 하다 보면 하루, 내지는 길어도 이틀이면 마칠 수 있는 숙달됨을 기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반대로 아직은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동일하게 위 책의 내용을 빌리자면, 우리는 때로 길일을 택하거나 흉일을 피하고자 합니다. 의도적으로 말입니다. 시작을 할 때 나름 하루의 할 일을, 한 주의 할 일을 정해놓지만 그 일이 미뤄지더라도 스스로에 합리적인 이유를 대며 다음 주로 미루거나, 그 일을 일찍이 마치더라도 스스로에 적절한 휴식을 부여하고자 합니다. 수-목요일에 일을 마치면, 그 주에는 휴식을 주고자 논문 작업을 다음 주로 미룰 때도 있습니다. 저도 그런 면이 많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다시 실험을 진행하고, 그럼 오늘 (금요일)은 논문을 한 편 읽자, 혹은 x-review를 써놓자, 혹은 그냥 쉬자’라고 생각할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스스로도 이 점이 아쉽다고 생각은 하였으나 또 똑같이 일주일을 마칠 때 즈음에는 또 다른 아쉬움만을 남길 뿐이였습니다. 그러다 위 책의 문구를 읽었고, 글을 쓰는 지금 다시 한번 어떤 일을 위한 적기는 없구나함을 생각합니다. 시작하지 않는다면 이루는(바뀌는) 일이 없다고 이야기하듯이 시작하기에 적절한 시점 또한 따로 없음을, 언제든 일을 시작할 수 있는 모드 변경이 이루어짐이 중요함을 스스로 글로써 회고하고 싶습니다.
또 다른 일화로, 최근 김태주 연구원님과 대화 도중 스스로 부끄러워진 점으로, 내가 이 분야의 연구를 하며 처음 어떠한 점을 생각하였었는지를 상기해봄도 중요합니다. 쉽게 말해, 저는 인공지능이 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자율주행 관련의 소프트웨어 회사 일원으로써 성장하고 싶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2018년 경 군 복무 당시, 한창 그제서야 인공지능이 꽃을 피울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았으며, 이 분야에서 공부하고 직업을 얻음이이 미래 시점의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어떤’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인데 (지금처럼 기술의 발전 속도에 압도될만큼 빠른 성장을 할지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렇기에 인공지능 분야에서 일하고자 하는 속된 요건중 하나인 석사졸업이 필요하였다는 점도 분명 어느 정도는 있습니다. 그럼 자율주행을 위함이였으니 오히려 코딩만 조금하던, 연구실 세미나를 들으면 매 발표자의 분야가 새롭게 느껴지던 시절에는 ‘이렇게하면, 저런 연구들은, 미래에는 이 방법이 자율주행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는 생각을 자주 하였습니다. 하지만 연구실에서 시간이 지나고 출근하고 근무함이 익숙해지며 이제는 슬슬 논문을 위한 연구 또는 취업을 위한 스펙의 연구를 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GPT가 매년 새로운 시리즈가 나오고, SORA는 5분 이상의 CG보다 더 완벽한 영상을 생성해내고, 더 새로운 기술들이 나옴에도 스스로 ‘너무 어려운데? 지금 하면 언제 논문 쓰고 결과를 내보일 수 있지? 내가 아는 분야에서 일년 조금 더 노력함이 더 좋지 않을까?’하는 현실적인 타협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물론 현실과 이상의 상충 관계에서 스스로의 삶에 대해 결정하는 스스로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만, 나는 과연 연구자로써 새로운 미지를, 또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 법한 일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고는 있는지를 돌이켜보고 있습니다.
이제 현재하고 있는 연구에 대해 한 문단 소개하고 넘어가자면 연초의 계획대로 Open-World Object Detection, OWOD의 연구를 진행하다 원복의 이슈와 과제/업무를 위해 잠시 Multi-Source Domain Adaptation, MSDA의 논문 작성을 위한 실험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에는 과제 내부 회의가 진행되며, 그 회의를 위한 실험/발표 자료 준비도 지난 주 한 주간 하였습니다. 이전이었다면 과제 내부 회의를 위해 언제부터 준비해야하는지 모른채 ‘해야하는데, 해야하는데, 언제부터 하지?’는 생각에만 잠긴 채 늦게나마 밤을 새며, 혹은 몇 주 전부터 천천히, 천천히 진행할 수도 있었을테지만, 지금은 내가 해당 일에 대한 계획을 스스로 세울 수 있고 그 일을 혼자서 어느 시간 내에 진행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기에 한 주라는 시간 동안 집중한 뒤, 다음 주에는 다시 논문의 실험을 2-3주간 진행하려 합니다. 요즘 파이썬이 참 색다르게 느껴집니다. 최근에는 코드들이 꽤나 어렵더라구요. 쉽게는 코딩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최소한 우리는 코딩은 누구보다 잘해야하나, 최근 정말 쉽지 않네요. 더욱 더 정진해야하며 속된 말로 의자에 엉덩이붙이고 코드 보는 시간을 더 늘려야할 듯 합니다.
후반기에는 연구를 진행하며 또 어떤 일에서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때로는 스스로를 되돌아볼지는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몇가지 사담을 마무리를 하고자 합니다. 예전 20살 시절 ‘나는 자식을 낳으면 어떻게 길러야지, 이렇게는 하면 안되겠다’며 아버지에게 서운했던 점을 반면교사 삼고자 노트에 작성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 한 번 크게 싸우며 그 노트를 보여 주며 나는 이렇게는 안할꺼라며 그 동안 서운한 점을 돌려 말했는데, 지금 보면 마음에 큰 대못을 박은 부끄러운 일이였습니다. 이런 부끄러운 과거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요즘 때로는 정말 흐르는대로 살아가는듯합니다. 남들처럼, 모나지 않고 적절히 흐르는대로 살아감도 분명 어려운 일이기는 하나, 예전 일처럼 나의 내면을 위한 어떤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해야하는 지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음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그러며 드는 생각은, 과연 나는 책을 얼만큼 읽은지입니다. 예전 아버지와 교보문고를 들릴 때, 20대 이전에는 만화책, 고전문학, 아니면 문제집 코너에 머물렀다면 그 이후에는 아버지와 함께 컴퓨터 책 앞에서만 몇 시간 앉아있다 옵니다. 그렇다할지언정 제가 그 컴퓨터 책들에 관심이 크게 있었을까요. 예전 기억을 돌아보면 한 6-7년 전쯤 도커, 쿠버네티스, 자바스크립트, 등 책 제목과 표지만 보며 ‘아 나도 프로그래머라 한다면 이 언어/프레임워크들 다 알아야하지 않나? 한 번 볼까?’ 싶다가도 그냥 휴대폰만 보며 아버지 책 읽으시는 동안 옆에서 쉬고 있음이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나이 들며 대학을 복학하고, 연구실에 들어오며 구글은 웬만한 지금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그렇기에 저는 더 책들과는 거리가 멀어짐을 느꼈습니다. 책뿐이였을까요, 드라마, 영화와 같이 1시간이 넘는 자료들도 원 테이크만에 소비함이 어려워지는, 그 일 년전 신정민 연구원님이 퍼뜨린 도파민 중독에 심취되어버렸습니다. 분명 과거에는 그 나이에 비해 유식해보이고자 어렵다는 군주론, 논어, 주역 등의 책을 읽고 소위 똑똑한 척을 많이 하였는데, 지금은 그 책 이름들이 잘 떠오르지 않을 뿐더러 다시 읽으라하면 엄두가 나지 않네요. 물론 우리처럼 학문을 업으로 삼으려는 젊은 이들이 학문에 몰두하고 매진함이 일순위가 되어야 함은 명백하지만, 더 나이든 이후에 똑똑함이 아닌 현명함을 얻고자 하려면 이는 단순히 지식에서만 비롯되지는 않음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구보다 똑똑한 바보보다, 현명한 사람으로 삶이 더 큰 인물로 생각됩니다.
또 마지막 사담으로, 최근 몇달 전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아버지가 “어느 순간 사람들이 스스로의 욕구에 미칠만큼 인공지능이 보여주지 않을 때, 또 다른 겨울을 볼 수 있다. 늘상 지금처럼 돈이 투자되고, 사람들의 수요가 생겨 평생 지금처럼만 되지는 않음을 명시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현재까지도 아버지와 의견 충돌이 생기면 늘상 다투곤 하는데, 저는 인공지능을 연구로 삼으려는 아들에게 왜 그런 이야기를 하냐하였지만, 몇달 뒤 문득 그 때의 말이 떠오르며 (이 때가 정확히 NVIDIA가 하락장을 시작할때였습니다) 생각하다 보니 우리가 거장으로 일컫는 인공지능의 학자들이 현 시점까지 인정받음은 그들의 꾸준함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과 수업에서 배우는 인공지능의 총 두 번의 겨울, 언젠가 세 번째 겨울이 또 다시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 시점에서 나의 연구가 아무리한들 빛을 발하지 못하고, 때로는 누군가의 웃음거리로 남겨질 수도 있겠죠 (아버지의 박사 시절에서는 퍼지 이론이 부양하였는데, 아버지는 지도 교수님이 퍼지 이론을 하라는 이야기와 함께 눈길이 갔던 그 당시의 딥러닝(MLP 보다도 이전) 연구를 하지 않음을 후회하곤 하십니다). 그 시점에서 어느 학자로 불리던 사람도 단순히 연구와 인공지능이 나의 수단으로만 사용되었다면, 물론 능력에 따라 다른 연구로 궤를 바꾸거나 또는 인공지능이 한 때의 버블인 사학이라며 비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때 내가 그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다면 다시끔 빛을 발할 시기도 온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내가 왜 이 연구를 하고 있으며 이 연구가 진정 재밌는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봄도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 저의 경우 이 고민을 하다 보니 드는 생각이, ‘나는 어느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했을 일을 함이 좋았으며, 일단 시작하고 나면 그리고 그 일에 몰두하고 나면 그 일이 재밌어지는 사람이구나’함을 느꼈습니다. 제게 지금 당장 화학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면, 두려움에 화학 연구를 시작할 엄두를 못낼 뿐 만약 그 일을 시작해서 몰두하는 때에 이른다면 또 굳굳하게 해낼 수는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그처럼 제가 연구를 업으로 삼고자 하는 이 시점에서, 몰두하는 이 학문이 재밌음에, 지금과 이전, 그리고 앞으로 시련이 닥쳐도 묵묵히 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또 도로 밖 자율주행 차들이 돌아다닐 때도 있을텝니다. 저도, 그리고 저희 연구실의 모든 연구원분들이 금년도 후반기, 이번 한해 잘 보내시고 더 좋은 스스로로 성장해나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